Mother nature, father time

“Mother nature, father time.”  자주 쓰이는 영어 표현이다. 그 정확한 유래는 모르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삶의 여건을 베풀어 주는 자애로운 어머니, 시간은 한치도 어김 없는 리듬으로 우리를 채찍질하는 아버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시간은 만물의 시작을 가능케 하지만 그들의 종말도 철저하게 챙기며 감정 없이 박자를 매기는 메트로놈(metronome)이다.

시간은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뛰는 사람을 긴장하게 하지만 목표의 성취가 가까와 지는 기대감을 주며 요긴하게 쓰일 삶의 밑천이 된다. 그러나 더 이상의 목표가 없거나 그것의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사람에게 삶은 죄수의 남은 형기(刑期)가 되고 시간의 형기가 만료됨을 막는 저항이 된다.

목표의 상실만큼 사람을 시간에 저항하게 하는 것은 나이가 드는 것이다. 노인은 삶의 마지막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노년에 이른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시간은 항상 어두둔 그림자를 드리우는 반갑지 않은 존재인 것 같다. 많은 준비와 단련을 통해 죽음을 향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두려움에 상당한 저항력을 기른 사람에게도 때로는 엄습하는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만큼 인간을 노력하게 하는 것도 없다. 장거리든 단거리든 챔피언은 결승선(finish line)에 임박하여 역주(力走: spurt)할 것이다.

최근에 어디선가 들은 말로는 “과거는 지났고 미래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니 가진 것은 현재 뿐”이며 그것은 영어로 “present”이고 그것은 곧 선물이라는 뜻으로도 통하니 현재는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두 present는 어원도 다른 것 같고 이런 말이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닌지 몰라도, 꽤나 뜻이 통하는 기분이 든다. 현재는 시간 중에서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니 말이다. 물론 과거를 잊고 경험을 살릴 수 없고 미래를 생각 않고 목표를 세울 수 없으나, 현재에 좀 더 충실하라는 뜻으로 새긴다.

그래서 나도 말 장난을 통해 은퇴(retire)를 재정의해 본다. 그것이 자동차의 바퀴(tire)를 다시 장착하는 것, 즉 re + tire이므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계기일 수 있어도 물러나 휴식하고 동작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고 억지를 쓰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처럼 체력이나 날카로운 의식을 요구하는 일에 부적합하더라도 차근차근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자신의 쌓은 지식이나 경험을 유용하게 쓰고 흥미를 느낄 사명을 찾는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저 감가상각을 당하는 노년을 맞지 않아도 될 것이니 말이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하고 싶거나 꼭 하겠다고 벼르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잠자리에 드는 것은 생애의 가능성을 반납하는 것이고 죽음의 연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고 싶어 한다지만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는 일이 너무 흔하다. 오락이나 소일거리가 없으면 참지 못하면서 오래 살겠다는 것은 진정 살고 싶은 것이 아니고 그저 죽는 것을 뒤로 미루려는 생각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모구가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정열을 품고 살아온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흙이라야 할 것이다.

한국출생(1954)
1985년 도미
애틀랜타 근교 둘루스 거주

Born in South Korea
Immigrated to the US in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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