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simply fade away.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다.” 어느 장군의 고별사에서 우리에게 널리 알져진 문구이나 원래는 장렬한 전사를 하지 못하고 노인이 되어 세인의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용사들의 감상적 한이라고 한다. 트로이에서 승화한 아킬레스 이래 전장에서의 죽음이 군인에게는 최대의 영광이었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을 간신히 느낄 수 있는 정도인 것은 현대의 전사(戰死)는 영광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챦은 핑게로 병역을 피한 현직 미국 대통령도 “포로가 되지 않은 사람”이 낫다는 식의 발언으로 전쟁 영웅을 비하하는 실정이니 당연하다. 현대가 추켜 세우는 용사는 전장에서 CNN과 인터뷰를 잘 해치우는 매끈한 용모와 말솜씨로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수십년 이상 위선과 허구와 얄팍한 실익의 추구에 길들여진 내 감각도 죽기보다 다만 사라져 가던 중에, 그야말로 시대착오(anachronism)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John McCain이라는 한 노병의 사라짐에 놀랍게도 그동안 마비되었던 미국인들의 감성이 잠시나마 굳은 표피를 뚫고 흐르는 중이다.

그는 사라지던 중이었다. 월남전 당시 해군 함재기의 전투 조종사로서 탑승 중이던 전투기가 두번이나 파괴되는 중 살아 남고, 5년 반의 포로 수용소와 고문과 유혹을 이겨내고 귀환한 그는 장렬한 전사를 하지 못해 영광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의 대선에 패하고 장렬한 은퇴를 하기보다 상원의원의 자리로 돌아가 힘 닿은 데까지 할 일을 하다 갔으니 정치의 전장에서도 영광을 놓친 것이다.

대선에서 그에게 패배를 안긴 Bush와 Obama가 장례식의 조사를 맡고 그가 최후로 대적했던 Trump가 대중의 압력에 시달리다 못해 백악관의 국기를 올렸다 내렸다하는 것이 마치 ‘사제갈 능주 생중달(死諸葛 能走 生中達: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쫓아냈다)’을 실감케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대중의 반응이다.

정치의 패자가 인생의 승자로 뒤짚히는 것은 소설이나 종교 문헌에서나 보는 것으로 체념하던 나에게 이번 주간은 통쾌한 슬픔과 전율의 시간이다. 그는 마지막 투병 중 가진 인터뷰에서 스스로 많은 실수를 했다고 자인하고면서 다만 나라를 사랑했다는 점에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개 정치인이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하면 내숭과 체면치례로 간주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McCain의 삶은 너무나 투명하고 직선적있던 탓에 그런 냉소적인 반응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가진 진정한 권위이다.

그는 자신이 다만 나라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명예롭게(honorably) 봉사했다는 평판을 단지 탐내고(hopefully)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겸손은 쉰 내 나는 반찬만 씹던 사람들에게 상쾌한 샘물의 맛을 주는 신선한 것이다.  원래는 세상이 이래야 한다. 다만, 이런 것이 너무 너무 드물고 번지르한 외관과 수식어 속에 문드러진 탓에 희귀한 쇼크가 되어 버렸다.

그의 덕목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이 시대의 탓도 있다. 그가 요순시절에 태어났으면 아마 강태공과 벗하며 낚시로 여생을 보냈을지 모른다. 강력한 표백 세척제가 요긴한 것은 지독한 악취가 나는 것들을 씻어야 할 때인 것처럼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가 목전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주관을 감추고 말을 바꾸는 현재의 중우 정치와 세태가 그를 눈에 띄게 만든 것이다.

실익을 상관하지 않고 뱃심대로 말하는 그를 독불장군(maverick)이라 부른다. 그는 Obama를 미국인이 아닌 아랍인이라고 주장하는 지지자에게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남북전쟁의 고름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South Carolina의 유세에서 인종차별의 상처를 자극하는 동상들이 철거되어야 한다고 명백히 선언했다.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대중의 여론에 민감한 사안을 질문하는 언론인들은 대개 직선적 대답을 얻지 못한다. 보드카와 과일 쥬스 중 무엇을 선호하냐고 물으면 칵테일을 이야기하며 뭉개는 것이 정치 입문에 필요한 기량이다. 그러나 그는 솔직함을 지키기 위해 많은 표를 잃은 패자의 길을 택했다. 이것은 야구 선수가 직구만을 가지고 승부를 겨루면서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는 것과 다르다. 이것은 스트라이크 존 자체를 옮겨 버리는 풍토에서도 정확히 한 중간에 던져 승부하는 명예로운 우둔함이다.

나 자신은 총기 규제에 관한 입장을 비롯해서 정치적 선호에서 그와 많이 다르다. 따라서 그의 구체적 정치적 행보에 큰 관심이 없었다. 병상에서 뛰쳐 나와 Obamacare의 표결에 참가하며 당파싸움의 종식을 외친 것이 기억나는 정도이다. 그리고 그가 병마와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심지어 치료를 포기했다는 발표가 나올 때까지도 그가 이처럼 빨리 타계할 것을 예상치 못한 탓인지 염려하는 정도에 그쳤고 한 사람의 용사(warrior)가 죽어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의 서거가 발표되자 나 자신은 물론 미국의 조야가 순식간에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것은 의논이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 독립적 행위의 경합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매우 당연하다. 그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해군의 4성 제독인 John McCain의 3대에 걸친 애국과 봉사, 그리고 그 정직한 고결성이 정치의 장에서는 그다지 유리하지도 유효하지도 않은 것이어서 그를 정치의 안목에서만 보는 세인의 주목에는 들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 그것은 정치가 아닌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소재가 되어 버린다. 그의 강직함과 정당성이 마침내 사람들의 양심을 깨운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그처럼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도 실천하지 못해 구멍난 자신들의 가슴을 기우고 있을 것이다. 집권자로서 챙길 모든 이익을 챙기다 측근들이 모두 수갑을 차는 궁지에 몰린 현재의 권력자도 허욕의 만리장성 속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철면피라도 지갑만 기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궁극적인 전장은 현세적인 돈, 권력, 명성이 아닌 인간성과 윤리의 전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출생(1954)
1985년 도미
애틀랜타 근교 둘루스 거주

Born in South Korea
Immigrated to the US in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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